SEOLLEM LINE · 이야기 노선 안내
설렘한권
연애운 기록 30편으로 만드는 별도 로맨스북
설렘한권
비가 그친 자리에서
서른 번의 작은 선택이 한 편의 사랑이 되기까지
이 책은 구성과 문체를 보여드리기 위해 미리 쓴 이야기예요. 회원의 기록을 사용하지 않았어요.
그림은 장면 구성을 보여 주는 예시예요. 애니풍 인물 삽화는 제작을 준비하고 있어요.
프롤로그 · 첫날 아침
첫 번째 기록
아침부터 비가 왔다. 스물여덟의 하루는 현관 앞에서 우산을 펴다 말고 휴대폰을 열었다. 그날의 연애운에는 짧은 한 줄이 적혀 있었다. 낯선 곳보다 익숙한 자리에서 마음을 쉬게 해 보라는 말이었다.
별것 아닌 문장이었다. 그런데 출근길 내내 그 말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늘 지나치기만 하던 카페, 창가에 놓인 커다란 머그잔, 비 오는 날이면 유독 따뜻해 보이던 불빛 같은 것들이 하나씩 떠올랐다.
하루는 아직 몰랐다. 서른 번의 아침 동안 남긴 작은 기록들이, 한 사람을 향해 천천히 이어지게 되리라는 것을.
1장 · 1~5일
우산이 두 개였던 날
카페 유리창을 타고 비가 흘렀다. 하루는 식어 버린 라테 옆에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평소보다 한 정거장 먼저 내려 들어온 카페는 생각보다 조용했고, 창가에는 빈자리가 하나 남아 있었다.
“여기, 가방 젖겠어요.” 옆자리 남자가 빈 의자를 가리켰다. 하루가 가방을 옮기며 고개를 들자, 그는 머쓱한 듯 웃었다. 웃을 때 눈꼬리가 먼저 휘어지는 사람이었다. “이준이에요. 저 건너편 책방에서 일해요.” “하루예요. 이름처럼 하루 종일 비가 오네요.” 이준이 소리 내어 웃었고, 하루는 그 웃음이 생각보다 오래 귀에 남았다.
둘은 창밖의 비와 유난히 큰 머그잔 이야기로 한 시간을 보냈다. 이준은 하루가 말할 때마다 몸을 조금 앞으로 기울였다. 잘 듣고 있다는 신호 같아서, 하루는 평소보다 말이 많아졌다.
비가 그친 뒤에도 둘은 한동안 일어나지 않았다. 문 앞에는 우산이 두 개 있었다. 하나씩 집어 들면서 이준이 말했다. “내일도 비 온대요.” 하루는 대답 대신 웃었다. 이상하게, 일기예보가 반가운 저녁이었다.
2장 · 6~10일
같은 문장에 머문 사람
일주일 뒤, 하루는 결국 길 건너 책방 문을 열었다. 우연이라고 하기엔 일부러였고, 약속이라고 부르기엔 아직 조심스러웠다. 계산대 뒤에서 고개를 든 이준의 얼굴이 환해졌다. “진짜 왔네요.” “책 사러 온 거예요.” “네, 그럼요.” 그는 웃음을 참는 얼굴로 대답했다.
하루가 집으려던 책을 이준도 동시에 잡았다. 손끝이 아주 잠깐 겹쳤다가 떨어졌다. “먼저 보세요.” 같은 말을 동시에 하고 둘 다 웃었다. 결국 한 권을 번갈아 읽기로 했다. 하루는 책갈피를 넣었고, 이준은 좋은 문장 옆에 작은 메모를 붙였다.
며칠 뒤 돌려받은 책 사이에는 메모가 하나 더 있었다. 「이 문장에서 하루 씨 생각났어요.」 밑줄 그은 문장은 이랬다. ‘어떤 사람은 비처럼 와서, 그친 뒤에도 공기를 바꿔 놓는다.’ 하루는 그 메모를 지갑 안쪽에 조심스럽게 넣었다.
3장 · 11~15일
한 정거장만 더
하루가 지친 날에는 답장이 짧아졌다. 이준은 이유를 캐묻지 않았다. 대신 “오늘은 이야기 안 해도 돼요. 집에 잘 들어갔다고만 알려 줘요”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하루는 그 문장을 두 번 읽었다. 누군가 내 하루의 끝을 궁금해한다는 게 이렇게 든든한 일인 줄 몰랐다.
금요일 밤, 야근을 마치고 나온 정류장에 이준이 서 있었다. 손에는 따뜻한 유자차 두 잔이 들려 있었다. “지나가다가요.” 책방은 반대 방향이었다. 하루는 모른 척 차를 받아 들었다. 둘은 의자에 나란히 앉아 버스 한 대를 그냥 보냈다.
다음 버스가 왔을 때 하루가 먼저 말했다. “한 정거장만 걸을래요?” 이준은 기다렸다는 듯 일어났다. 걷는 동안 둘의 어깨가 몇 번 스쳤고, 그때마다 둘 다 앞만 보았다. 한 정거장은 생각보다 짧았다. 헤어지기 직전 이준이 물었다. “내일, 시간 있어요? 제대로 된 데이트 신청이에요.” 하루는 웃음이 새어 나오는 걸 막지 못했다. “좋아요.”
4장 · 16~20일
첫 데이트의 규칙
첫 데이트에서 이준은 냅킨에 규칙을 적어 내밀었다. 「하나, 서로 궁금한 건 바로 묻기. 둘, 불편한 건 참지 않고 말하기. 셋, 오늘은 누가 더 설렜는지 따지지 않기.」 하루는 웃다가 펜을 빌려 한 줄을 보탰다. 「넷, 다음 약속은 헤어지기 전에 정하기.」
그 규칙은 생각보다 쓸모가 있었다. 며칠 뒤 이준의 답장이 늦어진 저녁, 하루는 서운한 마음을 짐작 속에 두지 않고 보냈다. “늦는 건 괜찮아요. 기다리는 동안 소식을 모르는 게 조금 속상했어요.” 이준은 변명보다 사과를 먼저 했다. “규칙 둘, 지켜 줘서 고마워요. 다음엔 짧게라도 먼저 알릴게요.”
그날 늦은 저녁을 먹고 나오는 길에 이준이 말했다. “규칙 하나도 지킬게요. 궁금한 거 바로 물어봐도 돼요?” 하루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물었다. “하루 씨도 저 만나는 날, 아침부터 기다려요?” 하루는 대답 대신 휴대폰 화면을 보여 주었다. 그날 아침 연애운 기록 끝에 적어 둔 한 줄. 「오늘 저녁, 이준 씨 만나는 날.」
5장 · 21~25일
손을 잡아도 될까요
토요일 오후, 둘은 공원 벤치에 앉아 편의점 간식을 나눠 먹었다. 이준은 하루가 좋아하는 딸기 맛을 기억하고 있었고, 하루는 이준의 컵에만 얼음을 조금 덜 담았다. 말하지 않아도 서로를 챙기는 일이 자연스러워져 있었다.
해가 기울 무렵, 이준이 오래 고른 말을 꺼냈다. “하루 씨, 저 하루 씨 좋아해요. 처음 카페에서 웃던 날부터요. 하루 씨 마음은 어때요? 천천히 대답해도 괜찮아요.” 하루는 천천히 대답하지 않았다. “저도요. 메모 받은 날부터 지갑에 넣고 다녀요.” 이준의 귀가 순식간에 빨개졌다.
산책길로 일어서며 이준이 물었다. “손, 잡아도 될까요?” 하루는 웃으며 먼저 손을 내밀었다. 손바닥이 생각보다 따뜻했다. 지난밤 비에 떨어진 꽃잎이 길 위에 남아 있었고, 둘은 그 길을 아주 천천히 걸었다. 하루는 그날 기록에 한 줄만 적었다. 「오늘, 처음으로 손을 잡았다.」
6장 · 26~30일
다음 장의 첫 문장
서른 번째 기록을 남기던 날, 하루는 첫날의 문장을 다시 읽었다. 익숙한 자리에서 잠깐 쉬어 가라는 짧은 말이었다. 그날 카페에 가지 않았다면 이준을 만나지 못했을까. 답을 찾기보다, 그 뒤로 자신이 했던 선택들이 떠올랐다.
반가움을 숨기지 않고 인사한 일. 책방 문을 연 일. 지쳤다고 솔직하게 말한 일. 서운함을 짐작 속에 두지 않은 일. 먼저 손을 내민 일. 가까워지는 마음은 커다란 사건보다 작은 선택들 사이에서 자라고 있었다.
이준에게 메시지가 왔다. “비 그쳤어요. 잠깐 걸을래요? 보고 싶어서요.” 하루는 창문을 열었다. 젖은 나무 냄새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좋아요. 이번엔 내가 유자차 살게요.” 답장을 보내고, 하루는 기록의 마지막 줄을 비워 두었다. 다음 장은 그와 함께 밖에서 써 보기로 했다.
에필로그 · 그 후
우리의 다음 페이지
그날 저녁 두 사람은 처음 만난 카페 앞을 지나쳤다. 창가 자리에는 다른 사람이 앉아 있었다. 하루가 빈 의자를 보고 웃자 이준이 잡은 손에 살짝 힘을 주었다. “저 자리, 우리 자리였는데.” “이제 우리 자리는 여기예요.” 하루가 맞잡은 손을 들어 보였다.
누군가의 마음을 미리 아는 일보다, 오늘 건넬 한마디를 고르는 일이 더 가까웠다. 둘은 앞으로도 망설이고, 가끔은 서운해할 것이다. 그래도 묻고, 듣고, 다시 손을 내밀 시간이 있었다.
“다음에는 어디로 갈까요?” 이준이 물었다. 하루는 이번엔 곧바로 대답했다. “아직 안 가 본 데요. 당신이랑.”